항구로 들어오는 대형 선박에는 도선사가 올라탑니다. 해당 항만의 수로와 조류, 선박 통항 상황을 잘 아는 도선사가 선장과 함께 배가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박이 스스로 항로를 계산하고 육상에서도 배를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이 과정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먼바다를 자율운항한 선박이 항구까지 스스로 들어올 수 있다면 도선사가 직접 배에 오르는 지금의 방식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질문을 살펴보려면 먼저 자율운항이라는 말부터 조금 나눠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박이 항해의 일부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것과 출항부터 접안까지 모든 과정을 사람의 개입 없이 수행하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율운항 선박이라고 모두 무인선박은 아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상자율운항선박(MASS)을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운항할 수 있는 선박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선박에 사람이 탑승한 상태에서 일부 기능을 자동화하는 방식부터 육상에서 원격으로 운항하는 방식까지 여러 형태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2026년 5월 IMO는 자율운항 선박의 안전한 운항을 위한 국제 안전규범인 MASS Code를 채택했습니다. 이 규범은 같은 해 7월부터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비강제 규범입니다. IMO는 향후 경험을 축적한 뒤 의무 규범으로 발전시키는 일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자동화 기술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선박을 자율운항 선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기능을 자율시스템이 담당하고 어떤 기능을 원격으로 수행하며, 선원은 어떤 역할을 맡는지를 구분해서 보게 됩니다.
따라서 ‘자율운항 선박이 등장하면 선원이 없어지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실제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도선사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먼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항구에 들어오는 것은 다르다
항구 밖의 넓은 바다에서 항로를 따라 이동하는 상황과 항만 안으로 진입하는 상황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항만에 가까워질수록 좁은 수로와 방파제, 다른 선박의 움직임, 접안시설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집니다.
조류와 바람도 영향을 줍니다. 같은 항구라도 선박의 크기와 흘수, 당시의 기상과 해상 상태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항구 안에서는 예인선이나 항만 관제 등 다른 주체와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현재 도선사가 필요한 이유도 이런 항만별 조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도선사는 단순히 목적지까지의 항로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해당 수역의 특성과 선박의 상태를 함께 고려하면서 입·출항과 접안 과정을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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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자율운항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먼바다의 항해가 자동화되는 속도와 복잡한 항만 안에서의 운항 방식이 바뀌는 속도가 반드시 같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도선사가 배에 올라타지 않는 방식도 가능할까?
현재의 도선 업무에서는 도선사가 도선선을 이용해 이동한 뒤 대형 선박의 사다리를 타고 승선하는 과정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선박의 원격운항 기술이 확대되면 ‘도선사가 반드시 선박 안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자율운항 선박에서는 육상의 원격운항센터가 선박의 일부 기능을 감시하거나 제어하는 방식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IMO의 MASS Code 역시 이러한 원격운항센터를 자율운항 체계의 한 요소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확대되면 장기적으로는 도선에 필요한 정보가 선박과 육상 사이에서 어떻게 전달되고, 도선사가 어느 위치에서 운항 과정에 참여할 것인지도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앞으로 도선사가 육상에서 배를 조종하게 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운항 방식은 기술뿐 아니라 각 국가의 도선제도와 항만 규정, 선박의 자율화 수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변화는 도선이라는 업무 자체가 곧 사라진다는 것보다, 선박 안에서 수행하던 업무와 육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의 경계가 기술 발전에 따라 다시 논의되고 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자율시스템은 항만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
사람이 운항하는 선박에서는 선장과 항해사, 도선사가 주변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자율운항 선박에서는 이 과정의 일부를 센서와 항해시스템, 통신망 등이 담당하게 됩니다.
문제는 선박 한 척만 자동화한다고 항만 전체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같은 수역에는 기존 방식으로 운항하는 선박과 소형선박 등이 함께 있을 수 있고, 항만 관제와 예인선, 접안시설 같은 요소도 연결됩니다.
IMO가 자율운항 선박을 기존 선박과 함께 안전하게 운항시키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율운항 기술의 발전은 선박 내부의 기술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선박과 육상, 항만 사이의 정보 교환과 운항 절차까지 함께 바꿀 수 있습니다.
도선사의 미래를 볼 때도 ‘AI가 사람보다 배를 잘 운항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자율운항 체계 안에서 항만의 지역 정보를 누가 제공하고, 선박과 항만 사이의 운항 판단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 것인지 살펴보는 편이 더 구체적입니다.
도선이라는 일은 어디에서 달라질까?
자율운항 기술이 확대된다고 해서 현재의 도선 절차가 한 번에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선박과 자율운항 선박이 함께 다니는 기간도 있을 것이고, 자율화 수준 역시 선박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의 지점을 찾으려면 도선사라는 직업 이름보다 도선 과정 자체를 나눠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박으로 이동하고 승선하는 과정, 항만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 선장과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 입항과 접안을 지원하는 과정 가운데 기술이 먼저 영향을 주는 곳이 어디인지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율운항 선박과 도선사의 관계는 단순한 ‘대체 여부’에서 벗어납니다. 배에 직접 올라타야 했던 업무가 다른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는지, 선박이 수집하는 정보와 항만의 지역 정보를 어떻게 연결할지, 원격운항센터와 기존 항만 업무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가 새로운 질문으로 등장합니다.
아직 그 답이 하나의 형태로 정해진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자율운항 기술이 실제 해운에 들어올수록 도선사를 포함한 현장 전문가의 일을 직업 이름이 아니라 운항 과정에서 맡고 있는 기능을 기준으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IMO), International Code of Safety for 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s (MASS Code)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IMO), FAQ - Autonomous ship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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