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스스로 항로를 계산하고, 공장의 설비가 이상을 감지하며, 물류 시스템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물건을 분류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기계가 더 많은 일을 맡게 된다면 오랜 경험을 쌓아온 현장 전문가는 결국 필요 없어지는 걸까요?
실제 변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동화가 맡을 수 있는 업무가 늘어나면서 사람이 직접 조작하고 확인해야 했던 일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반면 시스템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판단하고, 여러 정보를 종합해 개입 여부를 결정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역할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자율운항선박과 도선사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맡는 것과 사람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다르다
자동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되는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선박에서는 레이더와 각종 센서, 전자해도 같은 장비를 통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항로를 계획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공장에서는 설비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물류센터에서는 상품의 이동과 분류가 상당 부분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역할은 어디에 남을까요?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업무의 자동화와 직업의 소멸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의 직업에는 여러 업무가 섞여 있습니다. 정보를 확인하는 일, 장비를 조작하는 일, 정상 상태를 감시하는 일처럼 기술이 대신하기 쉬운 업무도 있지만 상황을 해석하고 예외에 대응하며 다른 사람과 협의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업무도 있습니다.
도선사가 대형 선박의 입출항을 돕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선박에는 항해를 지원하는 다양한 장비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항구에 가까워지면 상황은 복잡해집니다. 좁은 수로와 주변 선박의 움직임, 바람과 조류, 수심, 선박의 크기와 상태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기존 「도선사의 하루」에서도 이런 환경에서 도선사가 여러 정보를 확인하면서 선장과 예인선 등과 협력해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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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길을 안내하는 사람들, 도선사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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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운항 기술이 발전하면 이 가운데 일부는 시스템이 더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사람이 곧바로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제해사기구(IMO) 역시 자율운항선박을 단순히 ‘사람이 없는 배’ 하나로 정의하지 않고, 자동화된 의사결정을 지원받는 선박부터 원격으로 운항되는 선박, 높은 수준의 자율운항선박까지 다양한 운항 형태를 전제로 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즉 기술이 발전하면서 달라지는 것은 사람의 존재 여부만이 아니라 사람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느냐입니다.
정상적인 상황보다 ‘예상 밖의 순간’에 전문성이 드러난다
자동화 시스템은 미리 정해진 조건 안에서 움직일 때 강점을 발휘합니다. 문제는 현실의 현장이 항상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항만에 갑자기 작은 선박이 진입하거나 기상이 빠르게 나빠질 수 있습니다. 센서 하나가 서로 다른 정보를 보내거나 통신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습니다. 기계가 제안한 방법과 현장 전문가의 판단이 다를 때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순간에는 단순한 데이터 확인보다 상황을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숙련된 전문가는 눈앞에서 발생한 한 가지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조건을 함께 비교합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소리나 움직임, 수치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변화를 이상 징후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과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이 현장 경험의 가치입니다.
자동화가 발전한다고 해서 이런 판단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계가 정상적인 업무를 많이 처리할수록 사람은 기계가 처리하기 어려운 예외 상황에 집중하는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동화된 공장에서 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동안 작업자가 모든 동작을 직접 조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생산품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함이 반복되거나 여러 설비에서 서로 다른 이상 신호가 나타난다면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자동 물류 시스템에서도 평상시에는 수많은 물건이 알아서 이동하지만 시스템이 멈추거나 잘못 분류되기 시작하면 운영자는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판단하고 흐름을 복구해야 합니다.
이때 현장 전문가는 기계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해결하지 못한 상황을 처리하는 사람이 됩니다.
직접 조작하는 사람에서 시스템을 감독하는 사람으로
자동화가 가져올 또 하나의 변화는 전문가가 일하는 장소와 방식입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장비 바로 옆에 있어야 했다면 앞으로는 여러 센서와 카메라, 통신 시스템을 통해 떨어진 장소에서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순간에 개입하는 업무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자율운항선박 분야에서도 이런 변화가 이미 중요한 논의 대상입니다. 육상 원격운영센터에서 훈련받은 인력이 선박의 기능을 감시하거나 제어하는 방식이 고려되고 있으며, 유럽해사안전청(EMSA) 역시 자동화가 확대되더라도 인간 운영자의 역할은 중요하게 남고, 업무 변화에 따라 필요한 역량도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의 현장 전문가는 반드시 ‘현장에 직접 서 있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배 위에서 직접 상황을 확인하던 전문가가 육상의 운영센터에서 여러 정보를 분석할 수 있고, 공장 설비를 직접 돌아다니며 점검하던 기술자가 통합 관제 화면에서 여러 설비의 상태를 먼저 확인한 뒤 필요한 곳에만 출동할 수도 있습니다.
업무가 사라졌다기보다 전문성이 사용되는 위치가 이동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 변화에서는 새로운 능력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동화 시스템이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판단을 내리는지, 시스템이 보여주는 경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현장 경험과 디지털 시스템을 함께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해지는 셈입니다.
마지막 판단을 누가 내리고 책임질 것인가
자동화 시대에 사람의 역할을 생각할 때 빠뜨리기 쉬운 것이 ‘책임’입니다.
기계가 제시한 판단대로 움직였다가 사고가 발생한다면 누가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할까요? 시스템을 만든 회사인지, 시스템을 사용한 운영자인지, 현장의 책임자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특히 사람의 안전과 직접 연결되는 분야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합니다.
자율운항선박에 관한 국제 규범에서도 사람의 감독과 책임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2026년 국제해사기구가 채택한 비강제 MASS Code는 자율·원격 운항 기술을 안전하게 도입하기 위한 틀을 제시하면서 선장이 선박에 탑승하지 않은 경우에도 선박에 대한 총괄 책임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곧 인간의 책임까지 시스템으로 넘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도선사와 선장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전문가는 같은 선박의 안전한 운항에 관여하지만 맡는 역할과 책임은 같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누가 판단하며,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는지를 구분해야 실제 운항 체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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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배가 항구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선장이 배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항구 근처에서 다른 배가 다가와 누군가 선박에 올라타는 장면을 볼 때가 있습니다. 바로 도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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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 시대에는 여기에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참여자가 들어오게 됩니다.
사람 → 사람의 협업에서
사람 → 시스템 → 사람의 협업으로 구조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전문성은 단순히 기계를 잘 다루는 능력만으로 평가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판단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 신뢰하고 언제 의심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자동운항이나 자동제어를 중단하고 사람이 개입해야 할 시점도 결정해야 합니다.
자동화가 남기는 것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보다 ‘사람이 맡아야 하는 역할’이다
미래 직업을 이야기할 때 흔히 “AI나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기술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지금 사람이 잘하는 일 가운데 일부도 언젠가는 자동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질문이 필요합니다.
기계가 무엇을 못하는가가 아니라, 기계가 많은 일을 하게 된 뒤에도 사람은 무엇을 맡아야 하는가?
자율운항선박이 더 정교해져 스스로 항로를 계산하고 주변 선박을 피할 수 있게 되더라도 운항 조건이 급격하게 달라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자동화된 공장이 스스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반복될 때 원인을 규명하고 생산 방식을 바꾸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스템이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더라도 그 결과를 실제 현장에 적용해도 되는지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 전문가의 역할은 직접 조작하는 사람에서 감시하고 해석하는 사람으로, 정해진 절차를 수행하는 사람에서 예외를 판단하는 사람으로,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에서 시스템과 현장을 연결하는 사람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자율운항과 자동화가 발전하면 분명 사라지거나 크게 줄어드는 업무가 생길 것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업무와 새로운 형태의 전문가도 등장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던 모든 일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기술에 맡기고, 그 기술이 실제 현장에서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판단하고 감독하며 예상 밖의 상황에 대응하는 역할이 남습니다.
그래서 자동화 시대의 현장 전문가는 기계와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혼자 책임질 수 없는 마지막 구간을 맡는 사람에 더 가까워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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